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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살얼음판 동북아시아, 에너지 교류 위해 손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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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헬로티]

 

남북 화해로 가시화된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

 

러시아 국빈방문을 하루 앞둔 6월 20일, 문재인 대통령은 “철도, 가스, 전기 세 개 분야부터 남·북·러 3각 협력이 빠르게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는 시장 다변화와 신성장동력 확보차원에서 중국과 일본, 한국 간 국가전력망을 연결하는 동북아 슈퍼그리드를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에 ‘에너지포럼 2018’에서 ‘동북아 슈퍼그리드와 남·북·러 전력 연계망’을 주제로 발표한 이대식 여시재 연구실장이 강연한 내용을 제구성했다.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 정말 가능할까?


얼어붙었던 남북한 관계에 해빙기가 이어지고, 북미 정상회담이 원활하게 이뤄지면서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6월 20일, “앞으로 남북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한국과 러시아 간 협력에 북한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북한의 경제와 국가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문 대통령은 “러시아 천연가스가 가스관을 통해 북한으로, 한국으로 공급되고 나아가 해저관들을 통해 일본에까지 공급될 수 있다”며 “전기의 경우도 ‘에너지링(프로젝트)’ 등으로 동북아 전체가 함께 (협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말이 증명하듯, 러시아와 몽골의 풍부한 에너지 자원으로 생산한 전력을 역내 전력수요가 높은 한국이나 중국, 일본에 공급하는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이 꿈틀대고 있다.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1998년 러시아 ESI와 한국전기연구원(KERI)이 공동연구를 통해 최초로 제안했다. 이후 2011년 일본 REI가 재생에너지 기반 Asia Super Grid를 제안한 데 이어 2015년 중국 SGCC(세계 최대 송전기업)가 Global Energy Interconnection(GEI) Vision을 발표하면서 판이 커졌다. 2016년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남·북·러 전력연계와 일본과의 에너지 브리지 사업을 포괄한 ‘아시아 에너지 슈퍼 링(Asian Energy Super Ring)’을 제안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지난해 동방포럼에서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을 위한 협의를 시작할 것을 동북아 지역 모든 지도자에게 제안한 바 있다.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행동으로 옮겨졌다. 2016년 3월 한국전력공사(KEPCO)와 중국의 국가전망공사(SGCC), 러시아의 ROSSETTI, 일본 SoftBank는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을 위한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전력회사는 2016년 6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예비타당성 연구를 공동으로 수행해 경제성 확보 가능 결론을 내렸다. 당시 3개 전력회사는 중국 웨이하이와 한국 인천에, 한국 경남 고성과 일본 마쓰에에 HVDC 해저케이블을 매설하자고 의논했다. 2017년 12월에는 한-중 정상회담 기간 동안 KEPCO와 SGCC, GEIDCO가 ‘한-중 전력망 연계 거래조건 협정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재단법인 연구소 여시재의 이대식 연구실장은 “러시아와 일본은 가동되는 전력망은 없으나 최근 동북아 슈퍼그리드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고, 한국과 러시아 역시 가동되는 전력망은 부재하지만 한·러 전력 연계 타당성에 대한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일본 기업 SoftBank는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을 위해 몽골에 투자를 이어가는 등 동북아 슈퍼그리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북아 에너지 협력이 가져올 효용성


한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국가가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에너지 효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동북아 슈퍼그리드의 가장 큰 이점은 지리적 이점이다. 전력수요가 높은 지역과 전력공급 잠재력이 가장 높은 지역이 인접해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전력 소비는 북미 전체와 유럽 전체를 웃돈다. 한·중·일과 러시아, 몽골의 GDP와 인구는 전 세계의 20~25% 수준이나 전력 소비량은 그 이상인 30~35% 수준을 보인다. 


전력수요가 높은 국가 옆에는 든든하게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국가가 있다. 몽골과 러시아, 중국은 광대한 영토를 바탕으로 에너지 자원이 풍부하다. 몽골의 풍력, 태양광 에너지 자원은 한국, 중국, 일본 3개국 연간 전력수요의 2배 이상을 차지한다. 러시아 극동 시베리아의 잠재 발전용량은 1,347~1,982TWh다. 2015년 이 지역의 발전용량은 8,17TWh였다. 이는 한국 전력 사용량 505TWh를 상회하는 양이다. 


쉽게 말해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국가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전력수요가 높은 국가에 판매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몽골과 러시아는 남는 에너지 잠재자원으로 국가 경제도 살리고, 한국과 일본은 에너지 걱정을 줄일 수 있다. 게다가 한·중·일과 러시아 극동 시베리아, 몽골 간의 전력 가격 차이는 최대 20배 이상이 난다. 실제로 러시아와 이르쿠츠크 지역과 일본의 전기료 차이는 23배다. 한국은 몽골 지역 전기료보다 2~4배 이상 비싸다. 즉, 러시아와 몽골은 에너지를 수출해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꾀할 수 있다.


동계 에너지 피크 타임과 전력수요가 국가별로 상이하다는 점도 동북아 슈퍼그리드가 가진 효용성 중 하나다. 한국 기준 동계 에너지 피크 타임은 한국은 9시~11시, 일본은 17시~19시, 몽골은 19시~21시, 러시아 극동 시베리아는 20시~21시다. 2월 중국과 한국, 중국과 일본 간 전력수요 차이는 각각 약 1.2배, 1.3배 차이 난다. 에너지 피크 시간이 다르다보니 이 시간에 맞춰 에너지 수출·수입을 할 수 있다. 이대식 연구실장은 “에너지 사용양이나 사용 시간, 가격에 맞춰 에너지를 사고팔 수 있다. 에너지를 적게 쓰는 곳에서 많이 쓰는 곳에 팔면 된다. 이렇게 되면 동북아 국가들은 서로 윈윈할 수 있고, 사이도 더 돈독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슈퍼그리드 구축에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관계국에 여러 이점을 가져올 게 분명하지만, 구축 과정이 쉽지 않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대식 연구실장은 동북아 슈퍼그리드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선 전력 그리드의 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공급국과 소비국이 양분되는 한 방향 구조에서 참여국 전체가 공급과 소비를 공유하는 쌍방향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면서 “양자 간 장기 거래 계약 위주에서 다자 간 단기 거래 계약 위주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에너지 전력원도 선진화할 필요가 있다. 화석 에너지에서 재생 에너지로 전력원을 바꿔야 한다. 몽골은 일본 SoftBank의 재생 에너지원 프로젝트에도 불구하고 석탄화력발전소 추가 건설에 의존하고 있다. 서부 Telmen 지역에 100MW급 석화발전소 공사에 착수했고, 동부에는 100MW급 석화발전소 건설 양허 계약을 추진 중이다.


무엇보다 필요한 건 전력 시장 자유화와 초국경 관리 기관 설립이다. 슈퍼그리드는 국가 간 단순한 전력계통 연계가 아닌, 전력을 순수하게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하드웨어를 만드는 게 아닌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 한다. 이 연구실장은 “국가 간 전력거래를 위해 장기선도 계약과 현물시장 등 다양한 전력거래 시스템과 모델, 국제시세가 연동된 전력 가격 시스템, 전력 요금 결제와 관련된 금융시스템 등 새로운 시장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 과정은 많은 국가가 준비해야 하고 기간도 충분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장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는 초국적인 협의체 구축도 포함된다. 현재 동북아 국가들의 전력 시장은 여전히 국영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다. 중국은 발전, 송전, 배전, 소매 전 분야에 민간기업이 부재하다. 무역은 국영 SGCC가 독점한 상태다. 일본은 TEPCO Power Grid가 독립하고 소수의 소매 기업이 있어 총 수요의 2~3% 수준의 도매시장 등 일부 자유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메이저 발전사가 발전의 80%를 장악한 상황이다. 한국도 비슷하다. 한국은 발전 부문에서는 민간의 참여가 허용되고, 수요의 95%가 도매 거래되고 있지만, KEPCO가 발전의 75%, 송배전의 100%를 거머쥐고 있다. 몽골 역시 송전망은 국영기업이 꼭 쥐고 있는 상태고, 러시아도 발전의 60% 이상을 국영기업이, 배전과 소매 대부분을 국영 TSO인 ROSSETTI가 장악하고 있다. 이 연구실장은 “동북아 국가들에서는 전력 시장을 여전히 국영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다. 또한, 초국적인 협의체가 부재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은 어렵다”고 조언했다.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의 가장 큰 장애요인과 변수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의 가장 큰 장애요인은 따로 있다. 동북아 일부 국가의 열악한 전력 인프라다. 몽골과 러시아의 전력 인프라는 심각하게 노화돼 있어 국가 간 슈퍼그리드 효율을 심각하게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 몽골 화력발전소 대부분은 40~50년 이상 노후화됐다. 전력송전망의 전력손실도 약 28%로 높은 수준이다. 러시아도 심각하다. 이 국가의 전력 인프라는 70% 이상이 노후화되었다. 따라서 이대식 연구실장은 슈퍼그리드 경제성 판단에 앞서 국가 간 송전망 건설비용과 국가별 전력 인프라 개선비용 등에 대한 사전 검토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동북아 국가 간 이해관계 갈등은 동북아 슈퍼그리드의 가장 큰 변수다. 동북아시아에는 영토 분쟁 등 갈등 요인이 산적해 있다. 이 갈등들은 에너지 문제와 연계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2016년 일본 아베 총리는 러시아와 대치해있는 쿠릴열도 영토분쟁을 에너지 등 경협 프로젝트와 연동시켜 진행한 경험이 있다.


동북아 국가들의 슈퍼그리드에 대한 상이한 전략과 입장도 정책 공조를 힘들게 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을 자국 내 전력수요 충당과 세계 최고 전력 기술 수출을 목적으로 한다. 반면, 일본은 전력 부족 문제와 비싼 전기료 등의 문제로 슈퍼그리드가 필요하긴 하나 국가 간 영향력 최소화를 위해 해저 케이블 연결을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에는 북한과 연관돼 있다. 북한 문제에 대한 참여국들은 이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슈퍼그리드 구축에 북한을 제외하긴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동북아 슈퍼그리드와 남·북·러 전력연계망이 결합될 경우 해저 케이블 설치를 최소화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전력 계통상의 고립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러시아의 싼 전기 수입으로 발전소 추가 건설 갈등, 환경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전력 원가도 10~20% 낮출 수 있다. 이에 이 연구실장은 남북 간 현실적이며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북은 전력 계통 구성이 상이하다”며 “특히 북한의 낙후한 전력 인프라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남북은 기본주파수(60HZ)와 저압배전전압(220/380V)은 동일하나, 고압송배전망은 완전히 상이한 계통으로 구성돼있다. 또한, 북한 송배전망의 낙후로 단락, 누전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망 전체가 훼손될 가능성도 있다. 이대식 연구실장은 “남북한 전력망 전체를 연결할 경우 DC 연계방식이 우선 적용돼야 하나, 개성공단처럼 단계적인 AC 연계방식 적용과 북한 전력망 재구축 이후 연계를 확장하는 방식이 합리적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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