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별로 스마트 팩토리 전략 방향과 추진 동향은 각각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그 배경은 주력 제조업, 기술/사업 역량, 기업 간 구조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독일이 스마트 팩토리를 통해 새로운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를 구축하려 하는 것은, 주력 업종이 고정밀, 고중량 제품인 데다가 고객 기반이 다양해 맞춤화 생산의 압력에 크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기업들이 사물인터넷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사업모델을 창출하려 하는 것은 그들의 핵심 역량이 ICT 기술과 사업모델 기획력, SCM 운영능력에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엣지 컴퓨팅을 강조하는 이유는 스마트 팩토리 경쟁 구도가 미국과 독일이 제시하는 패러다임 중심으로 흘러갈 수 있음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향후 우리 기업들에는 한국 실정에 맞는 ‘제4의 길’을 모색하고 구현하는 것이 특히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스마트 팩토리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반으로 최근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스마트 팩토리는 독일이 주도하고 미국과 일본이 추격하는 양상으로 전개 중이다.
먼저 독일은 2011년부터 인더스트리 4.0의 슬로건 하에 국가 차원에서 스마트 팩토리 전략을 추진해 왔다. 인더스트리 4.0은 ICT 기술을 활용해 생산 공정을 업그레이드하고, 개발, 구매, 유통, 서비스까지 전 가치사슬을 통합하며, 나아가 셀 생산방식, 사이버 물리시스템(CPS) 등을 결합해 새로운 형태의 생산 체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미국도 2012년 이래 ‘국가 첨단 제조 전략’ 등 제조업 부흥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 새로운 미래 제조업 체제의 청사진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다만, 2012년부터 GE나 시스코의 산업 인터넷 전략 추진, 리쇼어링 추진 제조업체의 증가에 힘입어 스마트 팩토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산업 인터넷은 사물 인터넷을 산업 현장에 적용한 버전이라 볼 수 있다. 즉, 산업 현장에 사물 인터넷, 클라우드, 빅 데이터 분석 등 새로운 기술적 기반을 결합해 최근의 생산성 정체를 돌파하고 사업모델을 창출하자는 것이다.
일본은 2000년대 모노즈쿠리 전략, 2013년 산업 재흥플랜 등 다양한 제조업 경쟁력 강화 정책들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적시생산체제(JIT), 현장 암묵지, 지속적 개선(Kaizen), 모노즈쿠리 등 전통적인 생산성 제고 방법론을 중시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의외로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ICT 기반의 생산성 증대 가능성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전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 붐이 조성되면서, 일본 정부와 재계는 스마트 팩토리에 다시금 주목하고 있다.
3국 3색의 스마트 팩토리 전략
세 나라 모두 스마트 팩토리를 기존 제조업의 업그레이드 대안으로서 강조하고 있지만, 흥미롭게도 세부 전략에서는 미묘하게 다른 노선을 취하고 있다. 추진 주체만 보더라도 독일은 정부가 이끌며 활발한 산, 학, 연 연계를 통해 발전하는 형국이다. 반면 미국은 주로 산업 및 자동화 장비나 정보통신 대기업들이 주도하며 산학연 연계는 다소 미비하다. 한편 일본은 아직 구심점 없이 전기, 로봇, 기계, 부품 기업들이 각개 약진하는 상황이다.
▲ 그림 1. 현재 스마트 팩토리는 독일이 주도하고 미국과 일본이 추격하는 양상으로
전개중이다.
표준화 전략도 다르다. 독일에서 스마트 팩토리를 주도하는 대표적인 협의체는 Platform Industries 4.0이다. 이곳은 공적 표준화 전략을 추구한다. 독일 기업들을 중심으로 업계 표준을 만들고 ISO 등 국제 표준화 기구의 인증을 통해 세계 표준의 지위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의 IIC(Industrial Internet Consortium)는 개방형 혁신을 주창하며 세계 모든 기업들에 문호를 개방했다. 시장에서 국제적 지지를 얻어 표준 지위를 얻겠다는 것이다.
일본 대표 협의체인 IVI(Industry Value Chain Initiative)는 ‘느슨한 표준(loose standards)’ 전략을 표방한다. 여기서 느슨한 표준이란 표준화는 일부에 한정해도 좋고, 로컬 표준을 사용해도 좋고, 나중에 표준을 변경해도 좋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특이한 표준화 전략을 제시하는 이유로는 표준화 자체보다 기술 활용을 통한 생산성 개선이 더 중요하다는 실리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략적 목표도 다르다. 독일은 21세기형 생산 체제의 구축이라는 야심찬 비전을 추구한다. 20세기형 표준품 대량생산체제를 뛰어넘어 새로운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IoT의 연장선상에서 데이터와 네트워킹을 활용해 신사업 모델을 창출하고 새로운 수익원천을 확보하자는 실리 측면에 더 관심을 갖는다. 한편 일본은 카이젠이나 모노즈쿠리 등 전통적인 생산성 향상 기법이 도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관련 기술들을 보완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좀 더 관심이 있다.
마지막으로 인간에 대한 관점도 다르다. 흔히 스마트 팩토리라 하면, 기계에 의한 인간 대체, 대량 해고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독일과 일본에서는 의외로 스마트 팩토리 전략을 추진함에 인간을 생산성 제고 및 스마트 팩토리 진화의 중요한 주체로 인식한다. 한편, 미국의 산업 인터넷 전략에서는 인간 관점이 미약하다. 주된 목적 변수는 인간이 아니라 비용 절감, 생산성 향상이다. 즉, 인간은 아웃소싱되거나 기계로 대체될 수 있다는 기존의 자동화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 표 1. 독·미·일의 스마트 팩토리 전개 과정
▲ 표 2. 독일, 미국, 일본의 국가 차원 스마트 팩토리 전략의 주요 차이점
기업들도 국가별로 각각 다른 추진 동향 보여
기업들의 추진 동향도 국가별로 약간씩 다른 양상을 보인다. 먼저 독일 기업들은 컨베이어 벨트의 탈피, 설비 및 공장 간의 연결, 가상과 현실의 결합, 인간과 기계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회사 아우디가 준비 중인 스마트 팩토리는 컨베이어 벨트 대신 자동이송기구(AGV)가 자동차 반제품을 작업자 사이로 이송하는 셀 생산 방식을 채택했다. 또한, 훼스토(FESTO)는 모듈식 생산공정을 구축해 마그네틱 벤틸 부품을 시범 생산하고 있다. 나아가 F3 팩토리 컨소시엄은 일관 흐름 공정이 상식인 화학 산업에서 레고 블록 조립하듯이 유연하게 생산 라인을 구축, 변경할 수 있는 스마트 팩토리를 실험하고 있다.
반면 GE, 로크웰 등 미국 기업들은 당장 확보 가능한 사업상 효익을 추구하고, 이에 기반해 새로운 사업모델을 창출하려 하고 있다. 또한, 플랫폼 선점을 중시하며, 적극적인 외부 연계로 역량 강화와 세력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GE는 프레딕스(Predix)라는 클라우드 기반 산업 인터넷 플랫폼을 만들고, 네트워크에서 시스코, 유저 인터페이스에서 PTC, 보안 및 소프트웨어에서 액센츄어, 딜로이트, 와이프로 등 다양한 외부 기업들과 연계하고 있다. 또한, 로크웰, 하니웰 같은 전통적 자동화 기업들과 마이크로소프트, IBM, 오라클 등 기존 ICT 대기업들도 활발한 합종연횡을 통해 산업 인터넷 플랫폼 시장에 진입하려 하고 있다.
▲ 그림 2. GE Predix의 구조
한편 일본 기업들은 엣지 컴퓨팅이라는 차별적 개념을 통해 기존 기계나 계측, 자동화 장비들의 스마트화를 추구한다. 독일의 가상-물리 시스템(CPS)이나 미국의 클라우드 플랫폼은 산업 내 빅 데이터의 집중을 요구한다. 반면, 엣지 컴퓨팅은 분산형 컴퓨팅 관점에서 개별 기기나 라인 단위의 단말에 초점을 맞춘다. 빅 데이터, 클라우드 분야에서 독일과 미국 기업들을 이기기 힘든 점을 인정하고, 비교적 강점을 갖는 개별 기기나 라인 단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화낙(FANUC)은 엣지 컴퓨팅 방식과 인공지능을 결합해 FIELD(Fanuc Intelligent Edge Link Drive)라는 독자 스마트 팩토리 시스템을 발표했다.
로봇이나 CNC 기기에서 얻어진 현장 데이터를 클라우드에서 모두 처리하는 대신, 엣지 단인 공장 내에서 즉각 분석, 피드백해 기기의 지능화 수준을 실시간으로 올리겠다는 콘셉트이다. 클라우드에는 로컬 데이터에서 추출된 새로운 학습 모형 정도만이 공유된다.
▲ 그림 3. 산업 인터넷 플랫폼 시장 경쟁 구도
우리 체질에 맞는 스마트 팩토리 구상이 필요
앞서 본 것처럼 국가별로 스마트 팩토리 전략 방향과 추진 동향은 각각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그 배경은 근본적으로 주력 제조업, 기술/사업 역량, 기업 간 구조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독일이 스마트 팩토리를 통해 새로운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를 구축하려 하는 것은, 주력 업종이 자동차, 기계 및 관련 부품 등 고정밀, 고중량 제품인 데다가 고객 기반이 다양해 맞춤화 생산의 압력에 크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기업들이 스마트 팩토리를 통해 사물인터넷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창출하려 하는 것은 그들의 핵심 역량이 ICT 기술과 사업모델 기획력, SCM 운영능력에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엣지 컴퓨팅을 강조하는 이유는 스마트 팩토리 경쟁 구도가 미국과 독일이 제시하는 패러다임 중심으로 흘러갈 수 있음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향후 우리 기업에는 한국 실정에 맞는 ‘제4의 길’을 모색하고 구현하는 것이 특히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해외 국가, 기업들의 전략 동향을 주시하되 우리의 주력 제조업, 기술/사업 역량, 기업 간 구조의 특성을 고려해 우리 체질에 맞는 고유의 스마트 팩토리 전략과 추진 방향을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전자, 자동차, 조선, 화학, 철강 등의 제조업 기반이 강하다. 또한, 개념 설계 역량이나 사업모델 구상 능력은 부족하나 제조 전반에 걸쳐 고정밀 고품질 통합 역량이 강하다.
또한, 소품종 대량 생산에서 우수한 공정 관리 능력과 압도적인 양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나아가 대기업과 중견, 중소기업 간에 산업 단위별 위계화가 심하고, 생산성 격차도 크다. 우리의 주력 산업 기반과 강점 역량을 활용해 기존 산업 구조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스마트 팩토리 전략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나준호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