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G 상용화 놓고 韓日 주도권 전쟁
4차 산업혁명 기반기술 확보 나선 일본 주목해야
최근 열린 제5차 ITU-T IMT-2020 포커스 그룹 회의에서 KT가 제안한 5세대 이동통신(이하 5G) 통신망 관리 기술이 세계 최초의 5G 유·무선 통합 통신망 관리 표준문서 초안으로 승인받으며 글로벌 5G 표준화를 주도하게 됐다.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4일간 KT 우면동 융합기술원에서 열린 이번 회의에서는 Telecom Italia, NTT도코모, 사우디텔레콤 등 6개 글로벌 주요 통신사와 에릭슨, 노키아 등 11개 장비 사업자, 스위스 연방통신청, 중국 신통원 등 4개 국가기관, ETRI, 동경대 등 4개 연구기관 전문가들이 참여해 통신망 관리, 통신망 구조, 가상화 등을 주제로 5G 국제표준 개발을 논의했다.
▲ 2016년 ITU 전기통신표준총국 산하 IMT-2020 포커스 그룹 회의에서 의장 피터 애쉬우드(Peter Ashwood, 맨앞 가운데 회색 재킷), KT 김형수 박사(앞줄 왼쪽 두 번째) 등 IMT-2020의 5G 전문가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KT)
지난해 ITU-T IMT 2020 포커스 그룹 설립을 주도해 5G의 핵심기술인 초고품질·초저지연 제공을 위한 ‘종단간 5G QoS(Quality of Service, 서비스 품질)’ 표준화를 이끌어 온 KT는 ‘종단간 5G 망관리(End-to-end Network Management for IMT-2020) 분과’ 챔피언에 선정되면서 세계 최초의 5G 망관리 기본구조 표준 초안을 채택시키는 쾌거를 이뤄냈다.
하지만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등도 5G 시장 선점을 위해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만큼 5G 주도권을 둘러싼 각국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제조사·이통사 전방위 동맹
5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내 이동통신 3사도 국내외 정보통신기술(ICT) 제조사들과 협력하며 5G 시장 선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국내 통신사들은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 외국 업체들과의 협력 강화에 힘쓰는 모습을 보였다.
5G 기술 표준 규격을 마련하는 데 앞장서기 위해 ‘5G 표준연합’을 결성한 KT와 SK텔레콤은 미국 버라이즌(Verizon), 일본 NTT도코모와 함께 5G 시범서비스 규격 연합 ‘5G TSA’를 결성했다. 한국·일본·미국 연합이 결성된 셈이다.
이번 ‘MWC 2016’을 통해 괄목할 만한 성과도 도출됐다. KT는 터키 투르크텔레콤에 ‘기가 LTE’를, 스페인 카탈루냐 주 정부에 ‘기가 와이어’를 각각 공급하고, 방글라데시 모헤시칼리 섬에서는 ‘기가 스토리’ 사업을 벌일 예정이다. 또 SK텔레콤은 독일 도이치텔레콤과 파트너십을 체결해 미디어 플랫폼, 초소형 프로젝터 등을 공급하고, 스마트 시티 사업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특히 지난해 8월 삼성전자와 협력해 분당 종합기술원에 ‘초고주파 광대역 밀리미터파(mmWave)’ 연구개발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한 SK텔레콤은 ‘MWC 2016’에서 20.5Gbps 속도로 데이터를 실시간 전송하는 5G 시연에 성공했다. ‘mmWave’ 기술은 5G의 핵심기술 중 하나로, 기존 이동통신에서 주로 사용되는 주파수 대역보다 훨씬 높은 6GHz 이상의 높은 주파수 대역에서 보다 넓은 대역폭을 이용해 전송 속도를 대폭 향상시키는 기술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최초로 통신사 사옥에 5G 핵심 장비를 구축하며 주목을 받았던 SK텔레콤의 발 빠른 대응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고 전했다.
정부 차원 전략 수립 나선 한-일
한편 4G(LTE)의 차세대 버전인 5G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서비스가 개시될 전망이다. 5G 상용화가 오는 2020년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에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한 국가 간 경쟁은 이미 치열하다. 특히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세계 최초로 5G 시범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을 세우고 있는 한국과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을 계기로 5G 상용화를 추진하겠다는 일본의 경쟁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 5G에 대한 각국의 대응 로드맵 (자료: 에릭슨 재팬 '전파정책 2020 간담회')
삼성전자가 사실상의 세계 통신기술 표준을 정하는 민간기구에서 5G 기술을 제안하면서 표준화의 주도권을 잡았고, KT의 ‘종단간 5G QoS’와 ‘종단간 5G 망관리 분과’ 표준 초안이 연이어 채택되면서 언뜻 한국이 앞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낙관하기엔 아직 이르다. 5G를 단순 기술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와 생태계로 정의하고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한 일본의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양국은 정부 주도 아래 기업과 학계가 적극 참여해 5G 전략을 수립·추진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15년 1월 5G 상용서비스 추진을 위해 미래창조과학부 주도 하에 이동통신사, 제조사, 중소·중견기업, 민간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5G 전략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민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글로벌 시장 선도를 목표로 한 5G 상용서비스 로드맵을 구체화했다.
2018년 5G 시범서비스 추진계획 및 통신사의 5G 준비현황 및 계획을 점검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17일 열린 ‘제3차 5G 전략추진위원회’에서는 5G 시범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주파수 지정, 5G 장비·단말기 개발, 5G 시범인프라 구축 등에 대한 실무분과별 논의가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최재유 미래부 차관은 “2018년 5G 시범서비스, 2020년 5G 상용서비스 제공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로 5G를 적극 육성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민관의 긴밀한 협력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 역시 총무성 주도하에 2020년 5G 상용화를 목표로 5G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일본의 국가 ICT 전략을 관장하고 있는 총무성은 지난해 7월 ‘2020년 대비 사회 전체 ICT화 계획’을 통해 2020년 도쿄올림픽에 맞춰 주요 ICT 정책을 재정비하고 사회 전반의 ICT 활용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을 발표했는데, 구체적인 액션 플랜 중 하나가 산·학·관 연계를 통한 5G 상용화다.
핵심 전략은 2017년부터 5G의 여러 기술들을 통합해 실증실험을 실시하고 통신사 및 벤더와 함께 5G 서비스·BM을 개발하는 한편, EU와의 협력을 통해 국제 표준화를 주도하고 5G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 주요국 5G 추진단체 현황 (자료: 일본 총무성 '5G 시장현황 및 동향')
갈라파고스 증후군 벗어난 일본 주목해야
일본 5G 전략 추진의 중심에는 통신사, 제조사를 비롯해 학계, 총무성 등 43개사 125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5G 모바일 추진포럼(5GMF)’이 있다.
2014년 9월 NTT도코모, KDDI, 소니, 샤프 등 민간기업과 학계, 정부기관 등이 참여해 설립된 5G 모바일 추진포럼은 국제표준화 활동 및 5G의 기대효과·기술·시스템·서비스·비용 등 5G에 관련한 모든 분야의 연구와 논의를 통해 이슈를 도출하고 구체적인 전략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5G 네트워크 기술부터 서비스 개발에 이르기까지, 초기 단계부터 5G 생태계 전반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대해 검토하고 필요한 사항들을 준비하고 있다.
갈라파고스에 갇혀 있던 일본 기업들이 초기 단계부터 글로벌 기업들과 적극적인 제휴를 맺고 ‘5G 연합’을 구축하는 점 또한 눈여겨볼만 하다. 특히 일본 5G 시장을 이끌고 있는 NTT도코모의 경우 2014년 5월부터 자국 기업인 NEC, 후지츠, 미츠비시를 비롯해 화웨이, 노키아, 에릭슨, 알카텔, 삼성전자 등 9개 주요 기업들과 5G 기술 개발에 대한 개별 제휴를 맺고 각종 요소기술들의 연구개발 및 실증실험을 추진하고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자신들만의 폐쇄성에 박혀 실패를 경험한 과거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글로벌 표준을 노리고 있는 것”이라며 “한국과 일본이 5G 기술 개발의 선두에 서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칫 글로벌 시장에서 고립될 수 있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업 개시 위한 철저한 검토 필수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개발과 실증 실험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한다면 완전한 상업 서비스 개시는 2022년 이후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전기통신공업회(TIA: Telecommunications Industry Association)가 2015년 전 세계 58개 통신사업자를 대상으로 5G 전망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새로운 무선기술을 메인스트림으로 삼는 것은 터무니없는 경우”, “연구개발 협업, 주파수 결정, 투자대비 수익률 검토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TIA의 조사 결과, 응답자의 76%가 브로드밴드의 고성능화가 5G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답했으며, 74%는 주요 견인역으로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을 꼽았다. 특히 터치 인터넷이나 가상현실(VR) 등에 대한 전망은 밝지만 IoT에 비하면 기대치는 낮은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5G의 본질을 ‘기술’이 아닌 ‘서비스와 생태계’에서 찾고 있는 일본이다. 일본이 5G는 물론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3D 프린터 등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기반기술 확보에 나서는 것은 그동안 침체돼 있던 내수 제조업 시장을 강화시켜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 제조) 강국 일본’의 영광을 재현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동화 객원전문기자